저는 전문의 면허를 따고
첫 직장을 머나먼 시골마을에서 시작했습니다.
벌써 8-9년전의 이야기네요.
그곳에서 처음 만났던 선생님과
아직도 교류를 하고 지내고 있고,
2년 전에는 다시 같이 일하고 싶다는 전화에
지금 직장으로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심적, 물적으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던지라
'언젠가 한번 제대로 식사를 대접해야지...'
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요.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아 기회를 갖지 못하다가
선생님께서 직접
밥을 한번 사달라고 하셔서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뭐 드시고 싶은거 있으세요?"
"스시효 사줘요~"
"네?"
"스시효요."
음. 스시효라면 저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프리미엄 오마카세인데...
기꺼이 사드리겠다고 했고
선생님께서 안효주 셰프님의
20년 단골이시라며
직접 예약을 하겠다고 하셔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안효주 셰프님은 뭐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1세대 일식 셰프로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번외편에
한국 대표 스시 셰프로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분입니다.
아마추어 권투선수로 활동하시다가
부상 등으로 인해
일식집에서 일하시게 되셨고,
일본 연수 중 시마미야 사장님
(홋카이도의 유명 스시야인 스시젠의
오너셰프로 유명하시죠.)
과 연을 맺어 스시를 배우셨다고 합니다.
한국에 오셔서 신라호텔 일식당 아리아케에
입사하여 주방장을 거쳐 일식당 아리아케
총책임자가 되셨고,
2003년에 청담동에 [스시효]를 오픈하셨습니다.
한때는 왕성하게 활동하셨지만
지금은 예약손님 위주로 받으신다고 하며,
그마저도 11월 20일부터인가는 하지 않으시는 걸로 압니다.
아마 60살을 훌쩍 넘긴 연세이셔서
현업은 중단하시는 것 같으시네요.
스시학교를 세우겠다는 인터뷰가 있었는데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원래는 청담동에 있었다가
잠원동 파스텔플라자 2층으로 옮긴지
좀 되었다고 합니다.
저녁 6시 약속이었는데
늦장부리다가 5분 정도 늦어버렸네요.
스시효의 '효'자는
효도할 효자를 쓰는데요.
안효주 셰프님의 스승님께서
"손님에게 부모 섬기듯 정성을 다하라"는
의미에서 지어주셨다고 합니다.
입구로 들어가면 12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다찌석이 있고, 안쪽에 개별룸이 있습니다.
저는 개별룸으로 안내 받았습니다.
이미 식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후의
사진이긴 하지만,
룸의 분위기는 대략 이렇습니다.
제가 들어가니
제가 오늘 약속을 했던 선생님과
선생님의 조카 그리고 저희 병원 간호사 1명이 계시더라구요.
단둘이서 먹는 줄 알았는데...
제가 저와 선생님의 식사 값을 계산하고,
선생님이 조카와 간호사의 식사 값을 계산하기로...
(뭔가 복잡하다...)
스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시미도 나온 것으로 보았을 때
디너 사시미 오마카세(230000원)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안효주 셰프님의 스시 준비 사진,
안효주 셰프님과의 셀카 등을 찍고 싶었지만
왠지 민폐가 되는 것 같아 못했네요.
이제 스시 안 쥐신다고 하던데
찍어둘 것을 T_T
안효주 셰프님은
VIP 및 단골 손님만 받으신지 1,2년 되셨다고 하는데,
제 지인 선생님께서 20년 단골이라
특별히 출근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요리를 좀 보실까요?
제가 5분 늦은 관계로 몇가지 요리가
같이 나와버렸네요 ㅎㅎ
말차와 간장, 소금 등을 먼저 준비해주셨습니다.
소금은 24년된 소금을 쓰시는데
일본을 포함한 각국의 소금을 다 써봤지만
소금은 우리나라가 최고라며
우리나라 소금만 쓰신다고 합니다.
간장은 100% 콩간장에 가쓰오부시 국물을 섞어
감칠맛을 배가 시킨다고 하셨구요.
스시를 먹을 때에는 장국을 먹으면
스시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말차만 제공한다고 합니다.
셰프의 요리 설명도 들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이
오마카세의 묘미 아닐까요?
블로그 포스팅 각을 빡세게 잡고
이것저것 메모하면서 질문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좋아?) 대답을 잘 해주셨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 일본어가 되는 점을
신기해하시면서 좋아하셨어요.
(일본유학을 하셔서 일본어를 잘 하십니다.)
큰오징어입니다.
계란노른자(맞나?)와 특제간장, 실파가
어우러지는데, 시작부터 맛있네요.
들쩍지근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있어요.
에피타이저로 꽤 괜찮습니다.
복어사시미입니다.
위에 얇게 펼쳐진 것이 복어인데,
밑에 같이 싸 먹는 것은 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메인 생선만 여쭤봤어서요;;;
이건 특제소스(약간 간장 베이스)에 찍어먹는데
엄청 쫀득하고 맛있습니다.
사실 복어는 익힌 것만 먹어봤지 사시미는 처음이네요.
복어조리기능사 자격증도 있으셔서
복어손질도 기가막히게 하십니다.
아 술을 안 마실수가 없네요.
제 지인 선생님은 히레사케를 한잔 시키셨고
저는 에비스 나마비루(생맥주)를 시켰습니다.
꿀꺽꿀꺽~~~!!
역시 에비스~!!!
겁나 시원하고 맛있네요 ㅎㅎ
오늘은 어차피 가격 안보고
막 먹는 날이라 얼만지도 모릅니다 ㅎㅎ
입가심 3종 세트입니다.
절인 무, 초생강,
그리고 우메보시(うめぼし, 梅干し)입니다.
우메보시는 매실을 소금에 절여 말린 음식인데요,
일본 오니기리나 벤또 등에서 많이 보셨을 겁니다.
엥? 왜 우메보시가 빨간색이 아니야?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원래 우메보시는 이 색이 맞습니다.
빨간색은 차조기 잎을 넣어 물을 들인 거구요.
사실 저는 우메보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요,
그 이유는 아마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짜고 시고 맛이 없어서였습니다.
사실 일본인의 김치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음식인데요.
[스시효]의 우메보시를 먹어보면
'아 내가 왜 우메보스를 싫어했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렇게 짜지 않구요, 새콤달콤 하면서도
참 오묘한 맛입니다.
너무 맛있어서 직접 담그시냐고 여쭤보니
본인이 담궈서는 이 맛이 안 나오고,
일본에 계시는 스승님께서
직접 담궈서 보내주신다고 합니다.
어쩐지...
우메보시 하나에서도 대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그런 맛이 나네요.
줄무늬전갱이입니다.
전갱이과 어종 중에서
최고급 횟감 중의 하나입니다.
가을, 겨울에 수온이 낮아지면
물고기들이 추위를 견디려고
몸에 지방을 많이 저장하기 때문에
기름이 제대로 올라서
감칠맛과 진한 고소함이 일품입니다.
도미입니다.
이건 간장이 아니라 소금만 찍어먹으라고
하셨던 것 같아요.
쫄깃한 식감과 풍미가 좋네요.
오도로(참치 대뱃살)입니다.
입에서 그냥 녹아버립니다.
지금까지 먹은 오도로 중 제일 맛있었네요.
우니(성게알) 갑오징어입니다.
신선한 우니가 듬뿍 들어있고,
갑오징어와 와사비가 곁들여 있습니다.
우니는 전혀 비리지 않으면서 들쩍 지근하고
갑오징어의 쫄깃한 식감과
기가막힌 조화를 이룹니다.
이건 제가 하도 주는대로 잘 받아먹으니
서비스로 주신 사시미인 것 같은데요.
따로 메모를 안해놔서 뭔지를 모르겠네요.
광어인가?
하튼 맛있습니다 ㅎㅎㅎ
전복구이입니다.
전복도 제철이어서 통통하게
살이 올라 맛있습니다.
굉장히 부드러우면서도 식감이 좋습니다.
술을 계속 마시고 있으니
속풀이용으로 주셨을까요?
버섯야채탕?도 주셨습니다.
야채육수도 잘 내시네요,
시원하고 맛있습니다.
우니(성게알) 군함말이입니다.
신선한 우니가 듬뿍 올라가 있어서 맛있습니다.
김도 일본에서 공수해 오신다고 하네요 ㅎㅎ
오도로스시? 타다끼? 입니다.
이제 사시미가 끝나고 슬슬
스시가 나오는 것 같네요.
살짝 불에 그슬려서
소금이 올라간 것을 보니
타다끼가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고소하면서도 짭쪼름한데
입에서 역시 녹습니다.
스시에 소금간을 해서 주시기 때문에
따로 간장을 안 찍어먹어도 맛있습니다.
가리비조개라고 하셨는데,
관자겠죠?
칼집이 나 있어서 먹기 편했고
쫄깃쫄깃했네요.
아 도저히 못참겠다.
도쿠리(とくり, 徳利) 하나 시켰습니다.
도쿠리는 일본어로 술병을 뜻하는데
특히 아가리가 저렇게 잘록한 병을 말합니다.
그래서 보통 도쿠리를 시킨다는 것은
차가운 사케를 한병 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원래는 차가운 사케는 ~히에(ひえ, 冷え)라고
부르는 것이 정식이라고 알고 있지만요.
잔도 너무 예쁘네요.
목넘김이 부드럽고 맛이 강하지 않아
스시에 페어링 하기에 아주 적합한 사케입니다.
이것도 메모가 없네요.
고등어초밥일까요?
위에는 유자랑 쪽파가 올라가 있는데
진짜 맛있더군요.
꽃게탕도 주셨네요 ㅎㅎ
원래 있는 메뉴인가?
너무 잘 먹으니 이것저것
가게에 있는 거 막 주시는건가?
꽃게탕은 저희 어머니도 잘 끓이시는데 ㅎㅎ
와 술도 별로 못 먹는 사람이
안주가 좋으니 술이 계속 들어가네요.
저도 히레사케 하나 시켰습니다.
히레사케(ひれざけ, 鰭酒)는
말 그대로 지느러미술이라는 뜻으로
복어지느러미를 불에 쬐어 구워서
데운 술에 넣은 것을 뜻합니다.
정통식은 복어지느러미를 쓰는데
복어가 비싸니 다른 생선의 지느러미를
쓰는 집도 많습니다.
맛은 뭐 드셔보신 분들은 아실테고
음 한마디로 정의하면 뭐랄까?
가쓰오부시맛이 나는 뜨거운 사케입니다 ㅎㅎ
알코올의 끓는 점은 75.4도입니다.
히레사케는 보통 알코올이 날라가지 않는
최대한의 온도인 70-75도 정도로 아주 뜨겁게 제공됩니다.
멋 모르고 달려들다가는
입천장이 홀라당 데여버립니다.
그래도 식으면 정말 맛이 없으니(좀 비려진달까요?)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는 술입니다.
얼만지는 몰라요 계속 시킬 뿐 ㅎㅎ
새우초밥이라고 하셨는데
단새우초밥(아마에비)이겠죠?
이건 일반 초밥집에서도
많이 먹어보던거니 ㅎㅎ
그래도 맛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샤리(밥)의 양이
적지도 많지도 않고
딱 적당합니다.
뭐 그러니 대가겠지요.
참치등뱃살이라고 메모되어 있는데,
아까미(참치속살) 아닌가요?
하튼 너무나도 잘 숙성되어 맛있습니다.
메모가 없는데 연어알 군함스시겠죠?
연어알이 정말 크고 식감이 좋았습니다.
입에서 톡톡 터지는데 전혀 비리지 않고
신선하고 맛있습니다.
재료 하나하나가 너무 신선하고 부족함이 없습니다.
광어지느러미스시? 타다끼?
위에 올라있는 것은 뭐였을까요?
먹은지 오래되서 기억이 안나네요.
참치갈비살인데, 군함이라기보다는
작은 후토마끼형태로 나오더군요.
잘게 썰린 유자껍질이 들어있어서
상큼한 맛과 갈비살의 조화가 기가 막힙니다.
붕장어스시입니다.
붕장어스시는 한국에서는 처음 먹어보네요.
간장에 잘 숙성된 붕장어의 맛이 일품입니다.
어쩜 하나같이 간이 이렇게 완벽할까요?
여기까지 하고 잠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안효주 셰프님의 도마와 작업(?) 공간의 모습입니다.
요리에 있어서
맛보다 청결을 더 중요시한다는
지론이 있다고 들었는데, 역쉬~!
이건 원래 메뉴에는 없지만
술이랑 드셔보시라고 안주로 내주신
숭어어란입니다.
그렇게 짜지 않고 담백한 맛입니다.
이 스시도 메모에 없는데
고등어초밥일까요?
제가 하도 잘 먹으니 저만 2-3개 더 주셨거든요.
역시 기름이 좔좔 흐르는 입에서 녹는 맛입니다.
방생해 키운 닭의 유정란으로 만든 계란.
부드럽고 맛있습니다.
마끼도 하나 말아주셨습니다.
그냥 오이랑 시소(차조기 잎) 정도밖에 안들었는데
왜케 맛있는겨...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우동입니다.
면발이 탱탱한 우동인데 괜찮았습니다.
(막 엄청 특별한 것은 없어요 ㅎㅎ
우동 전문점이 아니니까요.)
디저트는 쌀로만든 아이스크림
원래 오마카세에는 아이스크림이 제공되지 않는데
손님들이 하도 찾으셔서
이 메뉴를 없애지 못하신다고 ㅎㅎ
호지차입니다.
말차는 차나무의 어린 잎을 갈아서 만드는데,
호지차는 차나무잎을 볶아서 만드는 차라서
구수한 맛이 일품입니다.
오마카세의 마지막으로 손색이 없죠.
이로써 모든 식사가 끝났습니다.
제가 먹은 한끼 식사 중 가장 높은 가격이었고,
가장 맛있게 먹은 한끼였습니다.
단점이라면 이제 다른 일식집의 스시가
좀 별로라고 느껴진다는 점이랄까요?
(일반 일식집 스시도 가성비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오마카세가 굉장히 화려해지고 있고
(특히 하이엔드들은요)
가게마다 시그니쳐 메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스시효]는 메뉴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굉장히 클래식한 오마카세였습니다.
화려함은 덜하지만 기본을 중시하는
오너셰프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완벽한 저녁 한끼였다고 생각합니다.
뭐 제 평생에 또 이렇게 비싼 요리를
먹어볼지 모르겠네요. ㅎㅎ